나이 어린 여자가 남자 소변통을 들고 다니며 아무렇지 않아하는 모습에 더 마음이 갔다고, 저 여인과 평생을 함께 해야겠다고 결심했다지. 이미 인터뷰에서 여러 번 봤던 이야기. 볼 때마다 가슴이 쓰리네. 나도 그런 기억이 있으니까.
알고 지낸 건 여러 해, 정식으로 사귄 지는 일 년쯤 되었던가. 장거리 연애가 힘에 부쳐 혼자 진지하게 관계의 지속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시점에 터졌던 사고. 구급차에 실려가면서 내 생각이 먼저 났다던, 친한 형이 바꿔준 전화에 고통이 잔뜩 묻어나던 목소리. 당장 달려가서 손 붙들고 같이 아파해줄 수 없음에 밤새 몸부림치고 괴로워했던 나. 이런 사람을 두고 이별을 생각했었나 자책하게끔 했던 스물 셋 그 해 겨울. 부산에서 서울로, 서울에서 인천으로 낯선 길을 달려 만났던 너는 참 아파 보였지.
가장 힘들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괴로워서 난 네 상처를 들여다 볼 용기조차 못냈어. 아무렇지 않은 듯 보여주는 피멍 가득한 엉덩이를 보면서 내가 속으로 얼마나 많은 울음을 삼켰는지 아마도 넌 몰랐을테지. 지금도 그 기억은 생생해.
너를 보러 간다고 탔던 첫 기차의 스산한 공기, 녹은 눈으로 질척거리며 지저분한 길에 굴렸으면 꽤 볼만했을 내 하얀 패딩 점퍼, 새벽에 출근하시는 네 어머니를 따라 종종걸음으로 너를 만나러 가는 길, 좁은 4인실 침대 위에 날 앉혀두곤 다리를 쓰다듬던 네 손길, 같이 먹었던 불어터진 어묵, 차가운 병실 복도, 소변통 들고 다니는 나를 바라보며 쑥덕거리던 간호사 언니들, 다리에 박힌 철심이 참 생생하게도 찍혀 있던 네 엑스레이 사진, 물리 치료실로 향하던 병원 맨 윗층의 아슬한 경사 같은 것들.
휠체어를 밀어본 적이 없는 서투른 나는 제대로 네 고생을 덜어주지도 못했던 것 같아. 고작 곁에서 소변통 몇 번 받아주고 발 한 번 닦아준 것 밖에는. 네 앞에서는 티낼 수가 없어서 주인 없는 네 방에 내려 앉은 뽀얀 먼지를 걸레로 훔치며 떨어트린 눈물같은 거 이제는 아무 의미도 없겠지만 그 때 난 참 많이 아팠다. 그래서 내 편지에 답장해줄 수 없었던, 휠체어에 앉아 나를 배웅해야 하는 네 마음을, 목발 짚느라 차가운 내 손 잡아주지 못하는 너의 힘겨움을 잘 몰랐던 게 아닐까 싶어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미안해졌어. 좁은 병실에 드러누운 남자한테 차일 정도로 내가 형편없었나 싶어 열이 났던 나는 참 어렸던거지.
그래서 내 이별이, 외로움이 아파서 끝내 네게 건강하게 잘 지내란 말을 하지 못했던 거 늘 미안했어. 다시 안 볼 사이여도 그래서는 안되는 거였는데. 아픈 너인데. 그 때는 내가 참 많이 모자랐었다. 그래서 도합 서너 시간을 전화기를 붙들고 울고선 씩씩하게 일어나 아침 일찍 우유에 시리얼 말아먹으며 이제 진짜 혼자니까 잘 지내야 한다고 건강해야 한다고 되뇌였었어. 넌 잊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날이 3월 1일, 룸메이트와도 헤어져 내가 처음으로 진짜 '혼자' 살게 된 날이었잖아. 그래서 그 날은 내게 좀 특별했어. 뭐 이제는 질펀한 술자리에서 꺼내놓을 수도 있게 된 농담 한 자락 같은 거지만 말야.
그냥 티비 보다가 오랜만에 네 생각났어. 아직 못 잊는 것도, 감정이 남은 것도 아닌데 가끔 생각나는 그 시절.
이제는 건강하겠지? 누구보다 활동적이었던 너잖아. 네가 농구하는 모습에 얼마나 설레였는데.
지금은 그 때보다 더 나은 실력을 뽐내며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고 있기를.



